울지마, 슬퍼마
이재민(국어과교사, 제 1회 대상수상자)
2002년 가을 무렵부터 자카르타 한인 아이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을 지나오며 들판의 꽃처럼 아름답고, 밤하늘 별처럼 빛나는 소중한 이름들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빗줄기가 후두둑 지나간 뒤 훅 스쳐오는 바람을 마주할 때면, 종종 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나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하곤 합니다. 이제 저는 바람으로 다가와 짙은 풀꽃 향기로 스며든 두 학생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효영은 ‘허허’ ‘호호’ 하며 늘 웃음을 나눴던 학생입니다. 또래 아이들과 섞여 놀기 좋아하고, 떠들며 웃기를 좋아했던 녀석이지요. 씩씩한 녀석이라 주위에 친구들도 많았고 똑똑한 녀석이라 공부도 꽤 잘했답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언제나 90도 배꼽 인사를 하며, “감사합니다. 선생님.” 함지박에 퍼 담은 하얀 밥알 닮은 미소로 제 어깨를 쭉 펴게 해주었지요. 그녀석이 고등학교 1학년 기말 시험을 앞두고 제게 이런 말을 건네 왔습니다. “선생님. 이번 시험 기간에 제 핸드폰 좀 맡아주세요. 눈에 보이니 제어가 안 돼서요. 이번에 꼭 성적으로 넘고 싶은 친구가 있거든요.” 보기에 이미 공부 잘하고 생활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녀석은 자기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먼 곳에서 통학을 하며, 늘 곁에 있던 더 잘난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겁니다. 어쨌든 다부진 각오로 시험에 임했던 효영은 전교 9~10등 권에 머무르던 성적을 3등으로 올려놓았습니다. 성적표를 가져오는 날 저는 녀석에게 어떤 상을 줄까 생각하다가 박하사탕 한 봉지를 준비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닌 효영에게 어울리는 가장 환한 맛을 내는 사탕이라는 멘트도 준비했지요. 그런데 웬 일로 그날 제 앞에 선 녀석의 얼굴빛이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유인즉 자기가 그토록 넘고 싶었던 학생이 정작 전교 1등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앞으로 나아가니 그 학생은 더 앞으로 달아나더란 것입니다. 네가 자랑스럽고 네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는 말을 해도, 녀석의 축 쳐진 어깨를 펴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녀석이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을 보내는 동안 갖은 노력을 다했건만 자신이 성적으로 넘고 싶었던 그 친구를 넘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대학 시험을 목전에 두고 치른 고3 1학기 기말 시험에서 효영은 결국 전교 1등이라는 성적을 받아왔습니다. 무척 좋아할 줄 알았던 녀석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결국 그 친구를 넘었는데, 마음이 무거워요. 그 전까지는 그 친구만 넘으면 세상 모든 걸 가진 것처럼 기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바보 같았던 것 같아요. 제가 넘어야 할 대상은 그 친구가 아니라, 제 자신이었던 거겠죠? 선생님은 알고 계셨죠. 제 몸부림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가를. 머리가 좋은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선생님이 평소 말씀해 주셨잖아요. 저 그 말의 뜻을 조금 이해할 것 같아요. 제 가슴에 화가 잔뜩 움츠리고 있었는데, 그게 제 주위의 친구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알고 보니 제게 화가 났던 거예요. 열등감을 미움으로 키워낸 제 자신에게요. 즐기며 공부하지 못한 제 자신이 후회돼요.” 그렇게 말하는 효영의 모습이 제게 얼마나 대견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소나기의 소년이 보랏빛 꽃물로 소년의 영혼을 일깨웠듯 효영의 숨찬 노력이 자신을 일깨웠던 겁니다.
그 뒤 효영은 대학 시험에 합격한 뒤, 파마도 하고 화장도 한 예쁜 모습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제게 잔잔한 가르침을 주고 갔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보시기 제가 늘 밝고, 공부 잘하는 학생 같았죠? 사실 저 처음부터 그런 학생이 아니었어요. 중학 3학년 무렵 아버지 다니시던 회사가 부도가 났어요. 그래서 저희 집도 생활이 어려워졌죠.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언니도 결국 집안 형편 때문에 미술 학원에도 못 다니게 되었고, 저는 더욱 뒷전이 되었어요. 그 시기 가난한 살림을 위해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현지 시장에서 생선을 떼어 한동네 사람들에게 팔기 시작했어요.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엄마는 매일 잠을 잘 수 없었지요. 저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온 집안에 스며든 생선 비린내가 저를 맞이하는 순간이 제일 싫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담배도 피우고, 술도 먹었지요. 공부. 그런 거 쓰레기통에나 처박혀 버려라. 그런 심보였죠. 밤에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를 어슬렁거릴 때 주위 분들이 저를 보며 ‘지 엄마는 살려고 그 고생을 하는데...’ 소리를 뒤꼭지로 들으면 더욱 심술이 났고, 더욱 삐뚤어지려고 했지요.
그러길 1년 가까지 할 무렵.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어요. 수학여행에 들뜬 주위 친구들이 엄마 아빠와 손을 잡고 새 옷을 사러가는 모습이 무척 부러웠어요. 저도 엄마에게 새 옷을 사달라고 졸랐어요. 엄마는 지갑에서 손때 묻은 돈을 꼬깃꼬깃 꺼내어 적지 않은 돈을 주었지요. 그냥 있던 옷 입고 가지 꼭 새 옷을 입어야 하느냐는 말을 남기면서요. 저는 그 돈을 받아들고 신나게 새 옷을 샀답니다. 그렇게 저는 새 옷을 입고 4박5일이란 시간 동안 신나게 수학여행을 즐겼답니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집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또 역겨운 그 생선 냄새가 나더군요. 꿈꾸던 앨리스가 현실로 돌아왔던 것이죠. 엄마는 여느 때처럼 무덤덤하게 생선을 다듬다 며칠 못 본 딸에게 기쁜 표정으로 달려왔죠. ‘우리 딸 잘 다녀왔어? 재미있었어?’ 저는 무심결에 제 몸을 안았던 엄마를 매몰차게 밀쳤답니다. ‘옷에 생선 냄새 배면 어쩌려고?’ 엄마는 딸의 매몰참에 멋쩍게 웃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또 엄마가 입고 있던 옷이 제 눈에 띄었어요. 제가 새 옷을 산 뒤 촌스러워 다시 입지 않겠다며 쓰레기통에 버렸던 옷. 저는 그 모습에 또 화가 났어요. 그걸 왜 주워 입었냐고요. 엄마는 또 죄인 같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선생님. 저 그날 방으로 돌아와 한참 동안 책상에 엎드려 울었답니다. 누가 죄인인가요. 엄마 가슴에 대못 박는 것이 특기인 저와 그런 딸에게 매번 미안해하는 엄마. 둘 중 누가 죄인인가요. 다른 사람 입에 들어갈 생선을 다듬는 우리 엄마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래도 엄마는 희망을 잃지 않았어요. 예쁜 딸들이 곱게 자라 엄마의 고통을 쓱쓱 닦아줄 것이라 믿었으니까요.
선생님. 저 그날부터 마음 다잡고 공부했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엄마 몸에 생선 냄새가 나지만, 그 냄새가 내 엄마이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향기라고요. 그 뒤 세상 어떤 것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부끄러운 것은 오직 제 자신뿐이었죠. 선생님. 이제야 제 부끄러움에 대해서 선생님께 털어놓아요. 홀가분하게...”
말을 마치고 눈가가 촉촉이 젖은 효영이가 왜 그리 찬란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녀석은 지금 대학에서 호텔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돈 많이 벌어 지난 온 삶의 아픔을 간직한 엄마를 행복하게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요. 저는 녀석이 반드시 찬란한 별로 예쁜 꽃으로 태어날 것을 믿습니다. 녀석이 세상의 문턱에서 좌절할 때 저는 가끔 녀석의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마. 효영아.” 위로할 수 있는 손수건이 되고 싶습니다.
하경이는 하얗고 뽀얀 피부에, 공부도 똑부러지게 잘했던 학생입니다. 욕심이 얼마나 많은지 제 또래 친구들이 하는 일은 다 잘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지요. 남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고3 바쁜 중에도 성실하고 마음씨 따뜻한 남자 친구와 예쁘게 사귀기도 했답니다.
저와 처음 만났을 때 입술을 깨물며 의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었고, 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녀석을 가르치며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했지요. ‘누구 집 딸인지 참 잘 큰다. 예쁘고, 공부 잘하고, 똑부지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교실 한 곳의 다른 아이들을 보며 ‘세상이 참 불공평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오랫동안 하경이를 가르쳤지만 이상하게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에 저 역시 적잖이 당혹해 하곤 했으며, 그 거리가 너무 완벽한 학생이기에 좁힐 수 없는 것이라 단정짓곤 했습니다. 모든 일에 우선 순위를 정하고 자신이 정해 놓은 틀에 맞춰 생활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 아이가 사람과 사람으로 마주할 때 과연 인간적 정이 있을까 편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학원 선생님과 학생. 돈을 내면 지식을 주고 받는 관계. 하경이와 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다가 녀석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늘 바쁜 일상을 보내던 어느 하루가 찾아왔습니다. 흔히 3월 14일 화이트 데이라고 아이들이 말하는 그날. 언제부터 이런 날이 우리에게 중요한 날이 되었는가. 저는 이런 정체불명의 기념일에 대해 조금 삐딱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날 교실 문을 들고 들어오는 몇몇 여학생들의 손에 예쁘게 포장된 사탕 바구니가 들려 있었습니다. 손에 들린 바구니를 보면 이 여학생이 어떤 남학생에게 얼마만큼 관심을 받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지그날 수업을 하는 내내 하경이는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눈가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모습이었지요. 저는 그때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하경이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업을 잠시 끊은 채 아이들 전체에게 전하는 충고 형식으로 하경이를 향한 독설을 쏟아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남자 친구의 관심을 확인 받는 사탕 바구니입니까. 아니면 대학 진학을 위한 내신 성적과 영어 스팩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매일 고민을 나누는 옆에 친구들입니까.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정말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여러분 곁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가 아닐까요. 저는 불혹을 넘기며 두 분을 잃었습니다. 평생 제 곁에 머물러 줄 것 같던 두 분 떠난 자리를 돌아보며 이제야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자 친구에게 사탕 바구니를 받지 못해 울먹이는 학생이 있다면 그 친구 세상에서 제일 못난 친구입니다. 여러분 그런 모습으로 살라고 여러분 부모님이 피땀 흘려가며 여러분 뒷바라지 하는 것 아닙니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그 보살핌이 세상에 홀로 던져졌을 때 얼마나 가슴에 맺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내뱉는 동안 하경이는 연신 눈물을 죽죽 쏟아냈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걱정끼쳐드려서, 다음부터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말하고 돌아서는 내내에도 하경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하경이가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았겠구나 싶으면서도 아주 잘난 그 모습에 선생이란 직위를 이용해 상처를 주는 내 모습이 매우 졸렬했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이 다 나간 텅빈 교실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웬 학생 하나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실은 하경이 오늘 남자 친구에게 사탕 바구니 받지 못해서 그렇게 슬펐던 것 아니에요. 학교 아이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하경이 엄마 하경이 중학교 때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오늘이 하경이 엄마 기일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서도 내내 슬퍼하고 울고를 반복했는데, 선생님께서 기름에 불을 붙이듯. 어머니 아버지 얘기하며 돌아가신 뒤라야 그 분들의 소중함을 안다고 말씀하셔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나서 한동안 정신이 먹먹했습니다. 한참 엄마에게 기대고 사랑받아야 할 아이가 그렇게 자기 생활에 철저한 이유가 있었구나. 어디를 가나 흠 잡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버틴 걸 모르고 나는 이 학생이 너무 잘나서 미워하게 되었구나. 의대에 진학하겠다고 당차게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다른 사람이 살리지 못한 엄마의 병을 자신은 고치겠다는 고집이었구나.
집에 돌아와 소주를 한 병 들이켜고, 편지지를 꺼내 사과의 글을 적었습니다. 하경이에게 부끄러웠던 마음을 모조리 쏟아내었지요. 며칠 후 편지를 건네주며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녀석은 그 상황에서도 맑은 눈을 동글거리며 “아니에요 선생님. 좋은 자극이 되었어요.제가 울기만 해서 무엇이 되겠어요. 이 시간을 더욱 열심히 보내는 것. 그게 제가 하늘에 계신 울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믿어요. 선생님 이제 울지 않을 거예요. 선생님 선물해주신 펜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학생이 될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선생님.”
불행하게도 하경이는 의대에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의대에 진학하려고 했던 그 모습은 히말라야 정상을 향하는 사람의 노력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 최고의 명문대 생화학과에 진학했으면서도 어깨가 축 쳐졌던 녀석에게 저는 하경이가 최고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아는 학생이기에 그 녀석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내용은 결코 헛되이 쓰이지 않을 겁니다. 하경이는 분명 결혼을 할 즈음 다시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게 될 겁니다. 슬퍼하겠지요. 하경이와의 인연이 긴 바람의 숨결로 이어져 어느 날 녀석이 다시 슬퍼할 때, “슬퍼마 하경아.” 보듬을 수 있는 따뜻한 햇살 한 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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