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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인도네시아에 '특별한' 바이러스 퍼뜨리는 한국

1,498 2020.05.2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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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인도네시아에 '특별한' 바이러스 퍼뜨리는 한국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남아남부협의회 회원이 20일 자카르타 북부의 한 빈민촌 주민에게 마스크를 씌어주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남아남부협의회 회원이 20일 자카르타 북부의 한 빈민촌 주민에게 마스크를 씌어주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20일 오전 33도 열기로 달궈진 악취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개천가에 중년 여성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손수레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자 하릴없이 하루를 소일하고 있다. 스와니(48)씨는 “자녀가 4명인데 부부 모두 일이 없어 집에 있다”고 했다. 맞은편 판자로 만든 집들 앞엔 빨래들이 널려 있었다.


자카르타 북부의 한 빈민촌 풍경.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자카르타 북부의 한 빈민촌 풍경.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북부의 네덜란드 식민시절 유적지가 즐비한 ‘코타 투아(옛 도심)’를 조금 벗어나면 빈민촌이 나온다. 주로 막노동, 가사도우미, 손수레 장사 등으로 생계를 꾸리는 50여 가구는 대부분 석 달째 일손을 놓고 있다. 정부에서 가구마다 매달 60만루피아(약 5만원)씩 3개월간 지원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전염병보다 가난이 무서운” 사람들이다.


자카르타 북부의 한 빈민촌 주민들이 20일 한국이 선물한 마스크를 끼고 개천가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자카르타 북부의 한 빈민촌 주민들이 20일 한국이 선물한 마스크를 끼고 개천가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네비게이션조차 좌표를 찍어줘야 어딘지 찾아갈 수 있는 이곳에 이날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동남아남부협의회 회원들이다. 이들은 불닭볶음면 40개들이 24상자와 마스크 500장을 마을에 선물했다. 물건을 받기 전 마을 주민들과 기도를 한 로하디(55) 이장은 “우리 마을까지 챙겨준 한국이 너무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평통 회원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지나가는 주민들을 붙잡고 마스크를 나눠줬다. 외출 시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가격이 10배 이상 오른 마스크가 빈자들에겐 부담일 수밖에 없다. 기뻐하는 주민들의 낯빛 덕에 동네가 밝아졌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남아남부협의회 회원들 20일 자카르타 북부 빈민촌에서 구호품 전달식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남아남부협의회 회원들 20일 자카르타 북부 빈민촌에서 구호품 전달식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평통은 이틀에 걸쳐 자카르타 도심 빈민촌 여러 곳과 보육원, 수녀원, 다문화가정 지원단체 등에 마스크 5,000장과 불닭볶음면 2만개를 선물했다. 마스크는 히잡을 쓰는 여성도 쓸 수 있게 끈이 긴 제품을 마련했다. 송광종 회장은 “회원들의 십시일반 정성으로 마련한 작은 나눔”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 도심 내 빈민촌 풍경. 집 아래 강은 쓰레기로 가득하다. 안타라통신 캡처

자카르타 도심 내 빈민촌 풍경. 집 아래 강은 쓰레기로 가득하다. 안타라통신 캡처


남을 돕는 일은 말만큼 쉽지 않다. 더구나 자카르타는 세계 어떤 나라의 수도에도 뒤지지 않는 마천루와 대형 몰이 즐비한 첨단 도시인 반면, 쓰레기더미와 악취가 생존을 위협하는 빈자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267개 지구 중 118곳, 도시의 절반 정도가 빈민촌이다. 2억7,000만 인구의 9%가량인 2,480만명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층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굶어 죽거나 아사 위기에 처한 사건도 간간이 언론에 소개된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당한다’는 우리네 속담이 절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 탕에랑의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 마을에서 한 한센인이 5일 한국인들이 선물한 쌀과 라면 등이 담긴 검은 봉지를 받고 있다. 최영미씨 제공

인도네시아 탕에랑의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 마을에서 한 한센인이 5일 한국인들이 선물한 쌀과 라면 등이 담긴 검은 봉지를 받고 있다. 최영미씨 제공


그럼에도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굴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뭐하냐”고 굳이 따지지도 않는다. 우리 기업이, 단체가, 개인이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현지인들을 돕는 선행에 시나브로 나서고 있다. 그렇게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 마을 5,000여명을 아사 위기에서 구했고, 의료 장비가 부족한 현지 의료진에게 한국산 방호복을 입혔다. 일상을 암울하게 무너뜨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 ‘행복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채만용(왼쪽 다섯 번째) 회장 등 인도네시아 땅그랑반튼한인회 회원들이 19일 탕에랑 지역에 코로나19 구호품을 전달하고 있다. 땅그랑반튼한인회 제공

채만용(왼쪽 다섯 번째) 회장 등 인도네시아 땅그랑반튼한인회 회원들이 19일 탕에랑 지역에 코로나19 구호품을 전달하고 있다. 땅그랑반튼한인회 제공


19일엔 자카르타 서쪽 도시 탕에랑을 기반으로 하는 땅그랑반튼한인회가 나섰다. 역시 지역의 한인 기업과 단체, 개인들이 작은 정성을 모았다. 채만용 땅그랑반튼한인회장은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 코로나19 진단장비와 방호복 등을 잇따라 기증하는 것은 양국이 하나라는 증거”라며 “우리 한인회도 인도네시아 국민과 고통을 함께 이겨나가자는 바람에서 마스크 3만장과 방호복 700벌, 쌀 5㎏짜리 1,500개, 라면 750상자, 식용유 1,000개를 지원하게 됐다”고 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남아남부협의회 회원이 20일 자카르타 북부의 한 빈민촌 주민들에게 불닭볶음면을 나줘주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동남아남부협의회 회원이 20일 자카르타 북부의 한 빈민촌 주민들에게 불닭볶음면을 나줘주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구호물품 중에 불닭볶음면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있다. 현지 유통을 맡고 있는 헤온즈의 이정호 대표가 요청이 있을 때마다 또는 자발적으로 개인 기부를 하고 있어서다. “한국인도 먹기 힘든 매운 라면을 왜 주느냐”는 일각의 우려는 현지 식습관과 상황을 잘 몰라서 빚어진 오해다. 인도네시아인들은 한국 사람 이상으로 매운 맛을 사랑한다.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전통 양념 ‘삼발’은 지역마다 특산품이 있을 정도로 수를 헤아릴 수 없지만 대개 매운 맛이 많다.


인도네시아 불닭볶음면 유통업체인 헤온즈가 인도네시아 오토바이택시 기사들에게 불닭볶음면을 선물하고 있다. 헤온즈 제공

인도네시아 불닭볶음면 유통업체인 헤온즈가 인도네시아 오토바이택시 기사들에게 불닭볶음면을 선물하고 있다. 헤온즈 제공


불닭볶음면은 지난해 기준 인도네시아에서 라면 점유율 10.3%로, 현지 라면들에 이어 전체 3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많고 잘 팔리는 라면이다. 발음이 어려워 현지에선 ‘삼양’이란 단어가 매운 맛의 대명사로 불리며, 불닭볶음면을 흉내 낸 모방 제품도 나오고 있다. 반면 개당 가격이 2,000원으로 현지 라면인 인도미(300원)보다 7배 가까이 비싸 가난한 사람들에겐 특식으로 여겨진다.






출처 : https://news.v.daum.net/v/20200521080234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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