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협-에세이 산책
예방 불 주사
인도네시아 초창기 시절, ‘불로라 거리’라 불리는 포장마차 천장에는 파리들이 가득 달라붙어 있었고 삶은 염소다리와 내장들이 걸려 있었다. 보기만 해도 내 속을 매스껍게 했던 그 고기들을 잘라 넣어 끓인 염소탕은 내가 처음으로 먹어본 인도네시아 음식이었다. 포장마차 주인은 그 염소다리와 내장을 잘라 도마 위에서 빠른 칼솜씨로 쓱쓱 썰어 펄펄 끓는 탕 속으로 모조리 쓸어 넣었다. 염소고기들에 붙어있던 세균들과 잘라진 파리 날개들도 고기를 따라 그 탕 속으로 쓸려 들어갔을 것이고, 그 종합 농축 염소탕을 내가 먹고 마셨다는 기억은 내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해서 괴로웠다. 내 배속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실제로는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온했다. 이 체험은 내가 지금까지 열대지방에서 배탈 나지 않고 살아남게 해주는 지혜를 주었다.
처음만난 나를 초대한 회사동료들을 따라 불로라 포장마차에 들어설 때 수많은 파리들이 편대를 이루며 포장마차 공간을 까맣게 덮으며 날아올랐다. 이 갑작스런 파리들의 발진 스크램블에 주인은 익숙한 솜씨로 촛불 세 개를 우리 앞에 놓으며 나름의 방공망을 펼쳤다.
그러나 파리편대들은 이 구식 촛불 방공망을 비웃듯이 뚫고 나의 얼굴과 팔등을 융단 폭격하며 날아다녔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천정에 달아놓은 삶아서 말린 염소다리, 내장에는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파리들이 발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마 파리들이 수도 없이 붙어 있는 저 염소다리나 내장이 우리가 먹을 염소탕? 식재료는 아니겠지 스스로 위로를 하며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포장마차 주인은 파리가 새카맣게 붙어있는 삶은 염소다리에서 고기를 베어내서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익숙한 솜씨로 쓱쓱 썰기 시작했다.
주인은 빠른 칼 놀림으로 썰어놓은 염소고기와 내장들을 펄펄 끓는 솥에 넣었는데 빠른 칼질 중에 염소고기뿐만 아니라 파리들이 옮겨놓은 세균들, 그리고 파리날개 등이 따라 들어갔으리라 짐작되었다. 저 탕을 먹고도 탈이 없다면 분명 저 화상지옥 펄펄 끓는 국물이 이 모든 세균들과 파리날개, 다리 등을 녹여버렸기 때문이리라. 펄펄 끓는 염소 탕을 국자로 퍼서 탕 그릇을 채움으로 탕 그릇 안의 세균들까지도 박멸되는 순간이었다. 연속되는 충격적 장면에 놀란 내가 두 사람은 어떻게 반응을 하나하고 번갈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를 초대한 그 두 사람은 파리다리가 들어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 뜨거운 종합 염소탕을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릇들을 깨끗하게 비우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울에서 일본보다 더 먼 거리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보르네오 깔리만탄 등으로 한국 신발, 조미료, 기계 등 영업을 뛰는 한국인들은 식당을 못 찾거나 위생과 배탈 등의 문제로 밥을 굶기 예사인데 이런 기회에 영양을 저축해 놓아야 며칠 굶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에 속이 움찔해졌다.
분명 세균들과 파리날개, 다리들이 녹아있을 염소탕 한 그릇을 다 비우고는 어려운 숙제를 다 마친 학생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간 내가 숟가락을 놓아야 하느냐를 한 참 고민했다. 나를 초대했던 동료들은 뭔가 터지기를 기대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가 있었다. 몇 년 먼저 와서 자리 잡고 있는 괭이갈매기들의 밥그릇 수 권리 텃세가 보통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신발 전문가라고 영입되어오는 낯선 존재인 내가 같이 일을 해야 하는 동료이기 전에 하루라도 먼저 온 기득권으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낯선 갈매기인 내가 숟가락을 놓으면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운 얼굴로 이 정도의 현지음식도 먹지 못하는 것은 속이 너무 깨끗해서 그렇다는 등 위로를 하며 세력권 안으로 포함시키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밥그릇 수 텃세는 어디서든 도미노 현상으로 한번 밀리면 다른 부분까지도 계속 밀리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후각, 미각, 감각기관을 모두 차단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숨을 멈추고 기계적으로 염소탕을 퍼 넣으니 아무 냄새도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나는 순식간에 파리 날개 염소탕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이 땅에서 나의 음식 선택을 맛 추구형에서 생존 추구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시각적으로 먹기 난감하게 만드는 지저분한 환경과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음식까지도 펄펄 끓여 세균만 없다면 좋은 음식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그 후로는 펄펄 끓는 물에 삶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음식이라면 내가 먹지 못할 음식은 없게 되었다.
지방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펄펄 끓인 소또 아얌을 즐기고, 족자카르타나 칼라산에 가면 한 번 삶은 후 다시 튀긴 아얌 칼라산( Ayam Kalasan)을 즐겨 먹는다. 내가 이 음식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확실한 멸균과정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나의 이 멸균 제일 정신은 내가 이 적도의 열대지방에서 환경의 배탈로부터 나를 지켜 주었다. 사람들은 길거리 음식을 두려워하지만 나는 잘 먹는 이유가 하나있다. 바로 삶거나 튀겨낸 음식을 식기 전에 먹는다. 내가 주로 선택하는 음식들은 바로 튀기거나 삶아서 균을 죽인 음식들이었고, 그것도 눈앞에서 요리한 것을 서너 시간 이내 먹을 수 있는 있는 것들을 더 좋아한다. 내 속을 들여다 본 의사 선생님은 이곳 인도네시아 땅에 살면서 먹은 온갖 음식들을 먹어서 장의 면역력이 튼튼하다고 했다. 현지음식을 미각, 시각 등 감각보다는 살균이 되는지를 먼저 살펴서 음식선택을 한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처절했던 현지 음식인 불로라 거리의 지저분한 환경 속 포장마차의 무 세균 음식 염소탕 체험은 나를 음식물로 인한 배탈로부터 막아 주었다. 음식이 빨리 상하는 뜨거운 열대의 땅에서 내가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배탈이 나지 않는지를 내 머릿속 깊이 새겨 주었다.
이 땅에 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상한 열대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하거나 심한 경우 치료를 위해 본국으로 후송 당하기도 한다. 낯선 땅에 뿌리 내리려면 최소한 배탈로 인해 후송 당하는 일은 없어야 성공한다. 나는 불로라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세균과 파리 날개 염소탕 체험 후 삶고 튀겨서 세균이 박멸된 음식을 먹었고, 그것도 음식이 식기 전에 바로 먹기를 생활 수칙으로 만들고 철저하게 지켰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현지음식으로 인한 배탈 없이 살아오고 있다. 불로라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그 끔찍한 염소탕 체험은 지금껏 나에게 배탈사고를 예방해 주는 불 주사였던 셈이다. 처음 이곳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던 그 당시 나에게 길거리 음식을 통하여 미리 예방 불사를 맞게 해준 옛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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