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협-에세이 산책
무공해 아침
이 태 복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아잔소리와 닭 우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뜨지 않았다. 오늘 살아야 할 세속의 때가 묻을까 싶어서다. 잠이 깬 이른 아침 마음이 맑아 좋았다. 어제 잠들기 전 본의 아니게 나로 인해 이웃들에게 마음 상하게 한일이 있었는지 내가 한말이 누구에게 힘이 됐는지 돌아보며 회개하고 잠이 들었다. 지난밤의 깊은 잠에 감사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감사하는 일이 많지만 때로는 생각이 달라서 갈등이 생기고 이로 인해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듣는 아침의 닭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아름답다. "하나님 이대로 좋아요. 눈뜨지 말까요?" 투정 아닌 투정을 해 보며 기도한다. "오늘 하루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지켜 주시고 이웃을 배려하며 살게 하소서...."
또 하루를 기도하며 기대하며 설렘으로 눈을 떴다. 일어나기 전 침대에서 몸의 시동 채비를 한다. 좌로 우로 가볍게 움직인다. 젊을 땐 벌떡 일어나지만 나이가 들면 기능이 떨어진 기계 같은 육체를 생각해 굼뱅이 체조를 해야 한단다. 창을 활짝 열었다. 우기임에도 하늘이 푸르다. 어른 키 만큼 큰 바나나잎, 싱콩잎, 강황잎이 온통 진초록이다. 두 쪽 출입문을 좌우로 열자 신선한 바람이 방으로 밀려 들어왔다.
자바의 머르바브산이 구름 모자를 쓰고 아침햇살을 맞을 단장을 끝내고 우뚝 서 있다. 숲이 뿜어낸 신선한 아침공기가 영혼을 소생 시키듯 온 거실 안을 환기시켜 준다. 또 하루의 상쾌한 시작에 감사한다. 신의 은혜와 축복으로 시작되는 하루다. 쿠쿠 전기밥솥에 쌀을 담고 코드를 꽂아 버튼을 눌렀다. 밥을 짓는 동안 조카가 가져다 준 한국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갔다. 요즘 채소 가꾸기로 재미들인 나를 위해 부 연구원장인 수나르씨가 무상 임대해 준 밭이다.
수나르씨 아버지 수마디 할아버지가 일구어 소득원으로 생강을 심었다. 한 켠에는 싱콩이며 고추, 호박, 가지, 여주, 비트 등, 식탁을 위한 채소를 심었다. 나의 아침 운동이 게으른 것과 혼자 살기에 먹는 양이 적어서 매번 채소를 사서 버리는 게 더 많다. 수나르씨가 안타까운지 아침산책 겸 채소를 직접 가꿔보는 게 어떠냐며 권했다. 얼마 전 종묘상에서 모종들을 사서 심었다. 이른 아침 밭에 들어섰다. 아침 이슬에 젖은 젖소 먹이 코끼리 풀, 싱콩 숲을 헤치며 들어서자 바지가 온통 이슬에 흠뻑 젖었다.
밭은 수마디 할아버지가 자바농부의 삽과 괭이 역할을 하는 짱꿀로 내가 심기 편하도록 퇴비 거름을 듬뿍 섞어 밭 한 고랑을 일궈 놓았다. 심는 것까지도 친절히 도와주었다. 내가 농사군의 자식인 걸 모르는 수나르씨 가족의 친절로 호사스런 농사를 짓고 있다. 스스로 찾지 않으면 공짜 소출을 먹어야했다. 땀 흘린 만큼 거두는 것이 농사인데 서른 고랑 넘는 꽤 넓은 밭에는 심지 않은 잡초들이 무성했다. 7개월의 긴 건기를 보내고 단비가 내리자 심지 않은 잡초들이 무수히 올라오고 있다. 수마디 할아버지에게는 요놈들이 원수였다. 수마디 할아버지가 큰 것들을 뽑아냈지만 새로 올라오는 놈들이 6.25 전쟁 때 중공군 몰려오듯 올라오고 있었다.
잡초 제거는 내 몫이다. 무수히 올라오는 잡초들이 1cm정도 됐을 때 호미 날로 살살 뿌리를 긁었다. 수많은 잡초들의 뿌리가 뒤집혀 지고 폭탄 맞은 것처럼 나뒹굴어졌다. 오후가 되자 잡초들은 깻 벌레 오그라들듯 뒤틀려 시들어 죽었다. 신무기의 위력에 수마디 할아버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침마다 호미를 들고 나가 산책 겸 두세 고랑씩 긁었다. 한국호미는 잡초의 싹수를 없애주는 신무기가 됐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신무기 호미의 실험은 대박이었다.
수마디 할아버지가 호미를 가리켜 엄지 척을 했다. 채소 가꾸기를 시작하고 수마디 할아바지는 밤마다 사랑방을 찾아오는 절친한 친구가 됐다. 함께?공부하는 벗을 학우(學友)라 했던가? 우리는 농우(農友)인 셈이다. 돌아올 때는 상추, 비트, 부추, 그 외 채소 잎들을 뜯어 왔다. 또 밭 뚝에서 싱콩잎 호박잎, 파파야 잎도 따서 심자 음식 연구소로도 톡톡히 역할을 해야 할 연구원 주방으로 돌아왔다. 주방에 들어서자? "쿠쿠가 맛있는 백미 밥을 완성해 놓았다. 유일한 한국말 친구인 쿠쿠 친구가 주인이 일을 다녀오는 동안 임무완성 했노라고 씩씩하게 보고 했다. 밭에서 뜯어 온 갖가지 채소를 씻어 물기를 빼고 둘로 나눴다. 샐러드용과 쌈밥 용 채소이다. 채소들을 맑은 물에 씻어 손으로 짜서 채반이 놓았다. 실험용 파파야잎, 싱콩잎 쌈밥용 나물도 준비했다. 씻어 놓은 양상추 적상추등과 비트잎, 부추 그리고 로컬 채소잎을 동일하게 씻어 채반에서 물기를 없앤 후 1cm 조금 넘게 썰었다.
정원에서 삼붕냐와 잎과 페파민트 잎도 따고?별모양의 과일 블림빙도 따서 채를 썰었다.
수마디씨가 밭가에 열린 것을 따다 준 아보카드가 때마침 잘 익어서 속을 숟가락으로 긁어내어 접시에 담았다. 채소준비가 끝났다. 멸치를 넣고 앞마당에서 땡초고추 3개를 따넣고 얼큰한 된장국도 끓였다. 조선간장에 식초와 설탕을 넣어 끓인 후 붉은 양파, 마늘, 고추, 깻잎으로 담아 둔 짱아치를 준비했다. 이만하면 진수성찬이다. 밥과 된장, 짱아치, 그리고 쌈장과 데친 채소, 야채 샐러드, 옥수수와 그라비올라를 넣어 우린 건강차로 무공해 식탁을 완벽히 꾸렸다. 쌉쌀한 파파야잎 쌈밥이 입맛을 돋우었다. 무공해 식탁 아침식사가 끝나고 만델링 아라비카 드립커피 한잔을 놓고 창문밖에 펼쳐진? 자연 풍경을 바라보며 졸필로 수필 한편을 써본다. 제목하여? ‘무공해 아침식사’ 자작 즉흥시 한편도 기호 식품처럼 곁들였다.
기쁨에 취해 밭에 있는 동안 모기들이 다리와 팔에 상처를 입힌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로 마음의 상처를 입히고 짐승과 곤충들은 육체에 상처를 입힌다. 식사 후 풀 알레르기와 모기에게 물린 상처로 가렵다. 하지만 긁지 않았다. 긁으면 상처가 더 심해진다는 걸 안다. 얄밉지만 모기들에게 감정의 전쟁도 선포하지 않았다. 내일부터 조심하면 되니까. 사람은 말로 마음에 알레르기나 가려움을 느끼게 하고 상처를 준다. 이런 것도 모기에게 물릴 때처럼 긁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다음에는 조심(hati hati)하면 되니까. 마음은 인니어로 ‘하띠’ 다. Hati와 hati 가 만나 상처입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마음과 마음이 만날 때 조심하자는 지혜로 인니사람들은 “하띠 하띠 Hati hati”를 조심하라는 뜻으로 쓰나 보다. ‘하띠’와 ‘하띠’ 가 아름답게 하나가 되면 더 좋겠지. 이렇듯 청정한 무공해 아침을 주신 오늘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날개로 날다 / 이 태복
나비 되어
훨훨 날아오르리라
뒤늦게 자바의 자연에서
느림의 미학을 배운다
어떤 날은 날아오르지 않고
기어오르려 했던 것을 회개 한다
산 너머 무지개가 보여도
기어 넘지는 않으리라
변화 없이 기어오르다
지쳐버렸던 젊음의 날들
늙은 애벌레는?
산을 오르지 않는다
다 내어 주고 고치 속에 번데기로
껍질을 깨는 변화를 기다릴 뿐
난 아직도 잎을 먹지만
날개가 생기면 훨훨 날아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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