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 PT. Cocoa Jewelry 이사
2010년 10월
제 1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인터넷 공모전에서 '내 친구 인도네시아'라는 작품으로 장려상을 받을 때 처음 만져보았던 앙끌룽. 대나무로 만든 그 악기가 내 삶에 활력소가 될 줄이야. 내 삶에 지침이 될 줄이야. 그저 한 울림 한 울림 모여 내는 소리가 그리 웅장한 협동적 예술이 되는 것을 그날, 시상식에서 처음 알았다.
2011년 11월
제 2회 공모전에서 '와양'이란 시로 우수상을 수상한 나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앙끌룽을 접하게 되었다. 앙끌룽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어졌다. 왜 만들어 졌는지, 어느 지역에서 유래 된 것인지, 역사에 대해서도.
2010년 유네스코에 등록된 인도네시아 전통악기 앙끌룽(Angklung)은 대나무로 만든 악기이다. 길이에 따라 다른 음을 내는 앙끌룽은 인도네시아의 서민의 대중적인 악기이다. 우연이겠지만 왠지 억지로라도 운명이라고 껴 맞추고 싶은 개인적 욕심. 내가 처음 앙끌룽을 접한 시기가 2010년, 유네스코에 등록 된 시기도 2010년이다.
대나무 앙끌룽은 흔들거나 쳐서 내는 악기로 크게 분류하면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손에 들고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세 개의 대나무로 이루어진 일반 앙끌룽과 쳐서 소리를 내는 대나무를 엮어 만든 앙끌룽에는 실로폰처럼 생긴 짜룸바(Carumba)와 세워져 있는 바스(Bass)가 있다.
전통 앙끌룽은 5음계를 사용하였지만 1938년 음악가 다엥소에 티냐(Daeng soetigna, 1908-1984)가 온음계를 개발하였고 인도네시아의 전통관습과 예술 및 문화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깊어 모심기, 추수, 할례와 같은 때에 의식용으로 연주되고 있다고 한다.
연구원 덕분에 인도네시아의 여러 앙끌룽 팀들을 만나 배우면서 양국간의 소통을 배우게 되었다. 일반 앙끌룽에는 숫자가 붙어있다. 1부터 7까지 그리고 i. 이 숫자들은 음계를 나타낸다. 1은 도, 2는 레, 3은 미 그리고 i는 높은 도이다. 이것은 대중들도 쉽게 이해하고 연주하기 위함이다. 연주자들은 지휘자의 손 모양에 따라 앙끌룽을 흔드는데 한번 배우면 바로 따라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대중음악이라 하는 것 같다.
2012년부터 매년 시상식 공연 때마다 첫 번째 오프닝 주자로 나서는 나는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해 연습을 했고 그 자체로도 즐거웠다. 그런 나날들을 보내던 2016년 9월 제 7회 문학상 계획을 세우던 중에 인도네시아 앙끌룽 지휘 선생님께서 스케줄이 맞지 않아 공연 준비를 함께 할 수 없다고 하시었다.
위기는 기회로 받아들이라 했는가 아니면 나의 오만 이었던가.
앙끌룽 연주만 하던 나는 사공경 원장님의 권유로 지휘를 직접 해보겠다고 맘을 먹었다. 40이 넘은 나이에 앙끌룽 지휘 손동작을 배워 남들 앞에 나서서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스트레스였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라는 생각을 하루에 몇 번씩 하면서. '그냥 포기해, 아니야 포기하면 안돼' 악마와 천사가 머릿속에서 에피소드를 만들며 춤을 추고 다녔다.
낮은 '도'는 주먹으로 표시하고 '레'는 손바닥을 펴서 보이며 '미'는 손을 수평으로 눕힌다. 이렇게 7개의 음을 외우는 것만 일주일은 걸린 것 같다. 머리 속 생각은 '미' 손 모양은 '파'. 난리 났다, 큰일났다. 한 달 남은 공연 때 내가 지휘 하겠다고, 겁 없는 내가 또 저질렀으니 책임감에 넘쳐나는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럴 땐 그냥 회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생각 했었다.
처음 지휘하게 된 곡은 'I HAVE DREAM'. '맞아. 나는 꿈이 있다.' 그 꿈을 향하여 고난을 이겨 나갈 것 이고, 파도가 오면 그 또한 넘어 버리겠다는 그런 곡.
생애 첫 지휘 공연 당일. 터질듯한 내 심장을 감출 길이 없어서 그 당시 채인숙 부원장님 조언대로 청중들에게 내 진심을 고백을 하기로 했다.
"여러분 저는 지금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지휘를 하다가 틀리더라도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라고. 다행히 실수는 하지 않았다. 다만 곡을 한번 더 반복 연주 했어야 했는데 한번 지휘로 끝내고 무대 뒤로 도망가듯 숨어 안도의 숨과 해냈다는 숨을 내뱉었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 후로도 5131솔도미도, 21레도, 1651도라솔도, 자다 깨서 외우라 해도 자동으로 떠오르는 숫자와 음계. 손목이 아플 정도로 연습했던 지휘.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회상하면 나름 열정으로 행복했고 내가 성숙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다. 소박한 대나무 악기 앙끌룽 때문에.
매년 우리 한인니 문화연구원은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교민들을 대상으로 문학상 공모전을 개최하고 테마지역을 결정하고 시상식을 준비한다. 족자테마 시상식 때는 족자 공주님이 오셨고, 찌르본(Cirebon) 테마 때는 찌르본 왕과 왕비님이 예술단과 함께 방문해 특별상 찌르본왕상을 시상해 주셨다. 각각의 테마를 정해 그 지역의 특성 음악공연을 더불어 준비한다. 발리 테마일 때는 한국의 전통음악 사물놀이와 인도네시아 전통음악 가믈란이 어우러져 멋진 공연을 한적도 있다.
인도네시아 가믈란의 공은 한국의 징과 비슷하다. 인도네시아인들과 한국인들이 같이 사물놀이 옷을 입고 상모돌리기를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손뼉을 치고 장단을 맞추며 즐거워하는 우리는 이미 모두가 하나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공연마다 나는 다른 앙끌룽 팀들과 각 테마지역 노래 연습을 한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우리의 아리랑을 배울 때 너무나 쉽게 연주를 하는 것이다. 아마도 다들 많이 들어 보았고 멜로디가 친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내게 물어본다, 아리랑 가사의 뜻은 무엇이냐고. 아리랑 노래 후렴구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설명할 때가 조금 난감하기도 하지만,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면 좋은 결과가 온다고 설명한다.
앙끌룽 연습은 생각 보다 많은 시간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여러 가지 직업이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스케줄 조절이 조금 더 복잡하다. 인도네시아 온라인 플랫폼 판매 회사인 Cocoa Jewelry의 CEO인 동시에 세 자녀의 엄마이고 한인니 문화연구원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작년, 2017년 10월 시상식을 위해 연습하는 동안 나는 한 달에 몸무게 5키로가 빠졌을 정도로 시간을 쪼개가며 연습을 했다. 빈민층 학교 학생들과 연습을 하는 것 보다 조금 어려운 팀은 부유층 사모님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앙끌룽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으나 강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그런 것 같았다.
그러므로 연습기간이 더 길어야 했는데 다들 바쁘셔서 본 공연 때 내가 원하던 화합의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관객들에게 참으로 송구했었다.
팀과 연주 연습을 할 때 누구 하나의 소리가 튈 때 가 있다 그럴 땐 정말 연습하기가 힘들다. 박자가 탁탁 맞지 않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노래방에서 둘이 노래하는데 한 명이 한 템포 빠르거나 느릴 때 느끼는 그런 기분이다.
앙끌룽을 배우기 시작했을 초창기 때 나를 생각하면 내가 그런 사람 이였지 않을까 싶다.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손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는 부드러운 소리 보다 땅땅거리는 소리를 내었던 나,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급히 혼자 앞으로만 갈 때의 나와 같은 걸까. 직원들은 느긋한 인도네시아인 난 급한 성격의 한국인, 잘 할거라고 믿고 나두면 안되고 자세한 방향을 알려주고 중간 체크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앙끌룽연주는 한 명도 빠짐없이 하나된 마음으로 연습을 해야만 감동의 멜로디가 되어 마음에 들어오듯이 회사를 운영하는 것, 친구들간의 우애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과 화합 그리고 이해와 용서라는 것을 앙끌룽에서 배운다.
앙끌룽은 인도네시아 전통 악기이지만 전통 노래뿐만 아니라 현대적 노래까지 전부 연주 할 수 있다. 언젠가 인도네시아 공영 방송에서 앙끌룽 연주 팀 '반둥 삼우조' 팀이 '미션 임파서블' 연주하는 것을 보고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었다.
앙끌룽에 드럼, 전기기타가 합쳐진 콜라보 연주는 세계적으로 앙끌룽을 더 넓게 알리기에도 충분 할 것 이다. 꼭 그렇게 될 것 이라 믿고 있다.
내가 무대 위에서 인도네시아 전통 악기 앙끌룽으로 한국 전통 음악 '아리랑'을 연주할 때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난 국적이 다른 인도네시아인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아리랑을 연주할 때 울컥 눈물이 나오려 하는 걸 참을 때가 많다. 난 절실한 애국자도 아닌데 말이다. 음악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어 나오는 하모니 때문일까.
앙끌룽을 만드는 대나무는 군집을 이루어 인간처럼 혼자 살수가 없다. 아기처럼 엄마의 영양분이 필요한 어린 나무를 자르면 안 된다. 대나무가 높게 자랄수록 끝부분은 날카롭고 좁아지는 반면 뿌리는 더욱 튼튼해진다. 인간도 마찬가지 이다. 튼튼한 인생을 위해서 기본 및 원칙을 가져야 센 바람이 불 때 현실을 직면하고 도전하여 극복하여야만 잘 살아갈 수 있다.
곧게 자라는 대나무처럼 나의 인생도 한 방향과 목적을 향해 정직하게 생활에 나갈 수 있기를, 나의 인생 스승인 앙끌룽과 함께 걸어가려 한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앙끌룽의 기본 의미, 조화된 음표의 협동심을 이끌어 내는 힘을 부여하며 오늘도 나는, 우리는 간다
수상소감 - 정윤희 우수상
몸살감기 약을 먹고 잠든 다음날, 아이들 도시락 준비를 위해 새벽 4시 기상. 힘든 몸을 이끌고 엄마라는 이름으로도 사는 나는 오늘도 해야 할 일을 한다. 전날 일찍 잠들어서 못 보았던 매세지가 있나 싶어 확인하는 핸드폰.
'축하합니다. 공모전에 당선 되셨습니다.'
여전히 막혀있는 코였지만 마음만은 뻥 뚫린 듯하다. 덕분에 기분 좋은 아침의 에너지를 받는다.
삶은, ‘언제나 항상 아래에 머물지도 않고 위에 있지도 않으며 적당한 희로애락을 주는구나.’하는생각이 들었다.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단체, 한인회 소속 비영리 단체인 우리 한인니문화연구원 모든 멤버들에게 감사하다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시공경원장님을 비롯한 모든 임원들. 얼마나 고생하시며 수고 많으신지 우리들만 아는 이야기들, 묵묵히 맡은 바 책임을 다 하는 우리들. 서로 어울릴 때 더 아름다운 앙끌룽처럼 화합하며 모두 멋진 삶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가교역할로 더욱 발전하게 될 한인니문화연구원에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연구원이 대나무처럼 군집을 이루고 튼튼하게 뿌리내리도록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더 꾸벅 인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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