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리깨질에 길들여진 멍석이요
이영미 / 주부 (버카시 거주)
"훠이 훠이" 아침부터 경을 친다. 마흔이 넘어 붙어버린 게으름 탓에 간밤에 미처 처리하지 못한 부엌의 싱크대에 남아있던 유리 컵 위에 해바라기 하듯 붙어 있는 도마뱀 한 마리, 어미 품을 벗어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연한 회색 몸뚱이는 사람과 섞여 산 지 얼마 안 돼 눈치도 없다. 저를 해할 가능성이 있는 무리 중 가장 조심해야 할 인간을 알아보지 못 한다. 기어이 행주에 한 대 맞고야 벽 타기를 시도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이 작은 생물을 잡을 생각은 없다. 서투른 몸짓의 도마뱀과 아직 곤히 자고 있는 네 살 된 둘째와 오버랩 되는 아이러니함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이 땅에 나보다 아니, 이 적도의 땅에 제일 먼저 발을 디뎠을, 한국인보다 먼저 터를 잡고 살아왔을, 도마뱀을 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벽에 붙어 있는 장식품이나 벽지의 무늬로 취급하니 제법 멋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적응 초기에는 저 네 발 달린 생명체에게 제발 집밖으로 거처를 옮겨달라고 부탁하는 약자의 마음일까? 요지경인 이 나라에 동화되지 않겠다는 약하디 약한 몸부림일까? 매번 빗자루를 들고 쫓아다니며 법석을 떨었다. 복날이 되면 바가지에 소금을 담아 집 밖을 한 바퀴 돌면서 "훠이 훠이" 외치며 소금을 뿌리던 기억 속의 어머니 모습이 이러했을까?
해외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 가면 유달리 검은 피부와 큰 눈망울 때문에 외국에서 몇 년 동안 산 한국인들에게 느껴지는 특유의 거주민 분위기를 풍기는 사춘기 초입의 큰딸에게 나도 내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첫아이와 7년 터울로 태어난 둘째는 나를 닮아 뽀얀 피부를 자랑한다. 둘째가 배시시 웃을 때면 외 꺼풀 눈인데도 첫째보다 고와 보이는 건 맑은 피부색 때문이리라. 첫아이가 네 살 때 한국에 있는 치과에 간 적이 있었다. 접수를 마치고 기다리는데 이국 땅에 사는 손녀와 한시라도 함께 하고픈 마음에 동행했던 시어머니의 톤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아이 제 손녀예요. 엄마, 아빠 다 한국사람이고 다문화 가정 아이 아니예요!”
이야기를 들어본 즉, 치과 한 켠에 마련해 둔 놀이방에서 역시나 데리고 온 손주를 돌보던 아주머니 둘이서 첫째를 보고 다문화 가정 아이라 그런지 시커멓다고 소근거리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상하셨단다. “어머니, 전 괜찮아요. 햇볕 좋은 데서 매일 수영하고 놀아서 그렇다고 자랑하시지 그랬어요?” 웃어넘기는 며느리를 흘겨보시며 하시는 말씀에도 일리가 있다. “얘, 요즘은 한국에도 다문화 가정 아이들 많아. 그런데 다문화 가정 아이라고 하면 얼마나 무시하는 지 알아? 아이 가슴에 피멍 들고 주눅드는 아이로 큰다.”
대학교 졸업 후부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태국으로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이국 땅에 첫발을 내딘게 벌써 14년 전이다. 10년을 방콕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가나 했더니 이번에는 적도에 위치한 인도네시아로 가서 살자고 한다. 회사를 그만둘 때 이미 남편의 직장생활을 지원할 목적으로 떠나왔기에 말없이 따라온 인도네시아! 관광의 도시답게 눈 파란 서양인들과 일본, 중국 사람이 많아 ‘나만 외국에 혼자 떨어져 지내는 외톨이’ 라는 느낌에 울적해 하지 않고, 처음 보는 사람과 겪는 어색한 분위기를 힘들어 하지도 않는 활달한 성격인지라 내 외국 생활은 수월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4년 전에 인도네시아로 와서 느끼는 그 말 못 할 이질감이란……
히잡을 두른 채 들뜬 여고생처럼 쉬지 않고 말하는 파출부들, 카페에서 전화를 받을 때도, 주변 제 할 일을 하며 분주히 보내야 할 대낮에도 윗옷을 벗고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연신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 정성 들여 화장을 하고 아이를 품에 안은 어린 엄마들,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큰 소리를 통화를 하는 인도네시아의 남자들과 여자들, 자카르타 도심을 벗어나면 띄엄띄엄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고는 질흙 같은 암흑만 보이는 인도네시아의 적막한 밤, 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 사십 평생을 모나지도 튀지도 않게 살아온 나의 가치관과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개인 기사와 파출부들이 타민족에 대한 내 반감을 자극하는 주역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오토바이가 고장 나 출근시간에 늦고, 기름값이 없어 출근하기 힘드니 기름값을 빌려달라거나 아이들의 수업료가 부족하니 지원을 해 달라는 그들을 종종 보고 듣고 경험하다 보니 그네들을 대할 때면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다.
열악한 인도네시아의 도로 사정 상 외국인, 그것도 여자가 운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직접 범죄나 교통사고를 가장한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개인 운전기사가 없어서는 안 될 상황임을 알고 그러는 행동이기에 화가 나도 참아야만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근엄한 미소를 짓는 ‘Chauffeur’라 불리는 영국 왕실의 마부나 나비넥타이를 반듯이 매고 하얀 장갑을 낀 예의 바른 영화 속 운전기사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상식이 통하길 바라지 말고 현지 문화에 젖어 소리 없이 살다 가라는 진심 어린 주변의 충고가 야속해지는 적응기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도리깨질에 길들여진 멍석처럼 유들유들해진 아줌마가 있더라.
아시아계의 보통 골격과 생김새를 지닌, 비슷한 듯 다른 인도네시아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싶다는 허황된 생각은 감히 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을 위한 배려가 없이 외국인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무를 강요하는 이곳의 문화에 쉽게 정이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큰아이 방학을 이용해 2년에 한 번은 나가는 한국, 자카르타에서 4,449km, 11,320리 떨어져 있는 나의 모국인 한국이 문득문득 그립다. 십 년을, 아니, 이십 년을 더 살아도 그럴 것이다.
이런 나의 비딱한 시선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 생겼다. 부모의 욕심으로 좋은 학교 보낸다고 첫아이를 한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학교에 보내다 아예 학교 옆으로 이사를 왔다.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길 수밖에 없지만 남편은 주말부부가 되는 것을 덤덤히 받아들인다.
“고마워! 애들은 걱정하지 말고 회사 기숙사에서 밥 잘 챙겨먹고 주말에 훈훈한 가족 상봉 하자?” 십여 년을 같이 산 아내의 때늦은 응석에 머리만 쓰다듬으며 이사를 찬성해 준 남편은 풋풋한 대학시절 처음 만났던 같은 과 선배오빠의 미소를 지은 채 월요일 아침이면 새벽같이 출근길에 오른다. 인도네시아에서 첫 거주지였던 곳을 벗어나 시작된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은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세 딸의 아빠라 책임이 막중하다며 결근과 지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처음의 약속을 고맙게도 지켜주는 운전기사 아저씨, 깡마른 몸에 간혹 밥값을 주더라도 집에서 기다릴 아이들의 간식을 살 요량으로 주머니에 넣으며 고맙다고 순박하게 웃는 모습에 불신으로 가득 찼던 나의 마음이 어느새 치유되었다고 하면 섣부른 판단이 될까?
그러나 이제 나는 깨달았다. 또 다시 그들에게 실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인도네시아인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녹록하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다름’ 때문이라는 것을. 운전기사와 고용주라는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나의 어리석음에 애써 자제하던 웃음도 마음껏 지을 것이며, 매번 차 문을 열어주는 기사 아저씨의 호의를 오해하지도 않을 것이며 매사에 지나치게 의심하는 꼬장꼬장한 내 성격을 고치도록 노력할 것이다. 악명 높은 인도네시아의 교통정체는 자가용을 가진 외국인들과 하이 소사이어티 내국인들에게만 해당된다. 응당 30분이면 도착했을 길을 3시간 째 달리고 있는, 아니 교통정체가 풀리기만을 기다리고 서 있는 차량들 사이로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오토바이를 탄 현지인들의 얼굴에는 유독 그늘이 없다. 밤에는 외출할 일이 없건만 엊그제는 남편 회사에서 가족 회식을 한다고 해서 자카르타를 향하게 되었다. 지구 온난화로 줄어든 강수량으로 우기 같지 않은 우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출발하고부터 소나기가 떨어진다. ‘후드득 후드득.’ 부지런한 운전기사 아저씨가 잘 닦아놓은 차 유리를 뚫고 들어오기라도 하려는 듯이, 제때 내리지 못해 불만이었다는 듯이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와이퍼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빗방울은 어느새 빗줄기가 되어 앞을 가린다. 목적지를 향해 잘 달리고 있던 자동차의 속도가 점점 줄어든다. 잠깐 사이 도로는 물바다가 되었다. 집중 호우가 내리는 우기철에는 도로 배수시설이 낙후된 자카르타 곳곳의 도로가 일시적으로 범람하여 교통이 마비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 사이 비가 그쳤다.
‘그냥 집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게으른 마음이 고개를 드는 찰나에 온 가족을 태운 오토바이 한 대가 옆에 섰다. 어딘가에서 소나기를 피해 있었나 보다. 아빠는 대여섯 돼 보이는 어린 딸을 앞에 앉히고 운전을 하며, 등 뒤에 바싹 매달려 있는 그보다 더 어린 아들과, 아들의 등을 꼭 끌어 앉고 방패막이를 하는 어린 아내를 잘도 챙긴다. 시끄러운 경적이 울려대는 도로 한복판에 멈춰서 버린 가진 자의 물질이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는 것을 비웃고 싶을 것도 같은데, 그네들의 표정은 가족의 안위를 살피는 것으로 끝난다. 마치 자신들과 그 외의 존재를 섞을 필요가 없다는 듯 무심한 행복을 즐긴다. 그 여유를 온몸에 받아들이며 현지에 동화되는 순진함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 순간 나도 함께 웃는다. 대인관계가 단출해지는 해외생활에서 갑작스레 취미생활 찾기도 힘들다는 말이 있건만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나는 엄마의 손길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어린 딸들에게도 이런 평화로운 웃음이 습관처럼 스며들기를 바라고 있다. 무뎌진 지성의 잣대와 이국 문화의 느림과 여유에 길들여져 반들반들해진 지푸라기 멍석, 나는 이미 그네들의 도리깨질에 길들여진 멍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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