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니문화연구원 50회 특별 열린강좌
“신이 머무는 그림자 – 와앙 꿀릿”
박송숙
2018년 4월 27일 화창한 토요일 아침, 이웃 지인과 내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한*인니문화연구원이 준비한 50회 특별 열린강좌 “신이 머무는 그림자, 와양꿀릿”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와양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발전한 그림자 인형 또는 인형극을 말한다. 평소, 와양에 관심이 많던 나로서는 놓치기 어려운 강의였다. 게다가 강연자가 노경래 선생님이 아닌가. 지난 해 1월, “인도네시아 화인(華人)” 강연을 들은 경험이 있던 터라, 강의 테마는 물론, 강연자에 대한 기대감이 저 멀리 창공의 애드벌룬처럼 부풀어 오르는 감정은 누르며, 발걸음은 가볍게 집을 나섰다.
강연장인 한국문화원에 들어서자, 강연 장에 장식된 와양 문양 바틱과 담소를 나누는 교민들의 정겨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배 고픈 육신을 위한 푸짐하고 맛깔 난 간식은 덤! 함께 간 지인과 아이와 함께 강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차와 간식을 즐겼다. 잠시 기다려라 나의 영혼아, 잠시 후 멋진 강연이 너를 그득 채워줄 것이다.
노경래 선생님은 후원해 주신 PT. ACCURATE C.E에 감사를 드린다며 심오한 와양 연구를 하신 다른 분들이 다음 기회에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 주십사 기대한다고. 겸손한 말씀으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드디어, 본격 강의의 시작. 와양의 종류는 28가지가 존재하는데, 중요한 것으로는 와양 오랑(사람이 직접 공연), 와양 술루(인간 모양의 가죽 인형), 와양 수켓(지푸라기 인형), 와양 꿀릿(물소 가죽 인형), 와양 골렉(나무 인형), 와양 베베르(두루마리 공연) 등이 있다고 한다. 이 중 오늘의 주인공은 와양 꿀릿(Wayang Kulit)이었다.
와양 꿀릿은 그림자 또는 상상(想像)을 뜻하는 Bayang에서 유래한 ‘와양(Wayang)’과 가죽을 의미하는 ‘꿀릿(Kulit)’의 합성어이다. 대체로 중국, 인디아를 거쳐 인도네시아로 전해져 왔다는 설이 유력하며,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서도 발전한 인형 또는 인형극 형태이다. 4년된 물소 가죽이 최고의 재료라고 했다.
와양 인형극을 진행하는 사람을 달랑(Dalang)이라고 하는데, 그는 연출가, 변사의 역할을 함께 하는 종합 예술인이다. 달랑의 레퍼토리와 연행 기법은 가문 안에서 구두로 전승되고, 달랑은 이를 모두 기억했다가 흥미진진한 구절이나 시적인 노래를 재치 있고 독창적으로 낭송해야 인정을 받는다.
와양 꿀릿에 동원되는 공연 장비는 중 특히, 구눙안(Gunungan)은 아주 중요한 도구로 대우받는데, 이는 힌두 3신의 하나인 시바(Shiva)의 거처이자, 세상의 중심, 스메루(Semeru) 산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극의 시작과 끝, 중간 장면 바뀜을 알리는 역할, 선과 악의 인물 구분, 물/불 표시,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구눙안의 장식은 매우 독특한데, 평화, 자유, 영리, 분노, 청결, 생사, 번영, 기쁨, 풍요, 선행, 시간, 수호자 등 아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고 한다.
자, 이제 와양의 스토리 전개 방식을 살펴볼까. 보통, 오후 6시부터 밤 9시까지, 관중이 집결하고, 공연 도입을 알리는 가믈란(Gamelan) 연주가 진행된다. 밤 9시부터 자정까지 실제 공연이 시작 및 진행되며,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 등장인물들이 본격 등장하여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나가고, 새벽 3시부터 새벽 6시까지 대전투가 진행되며, 결말이 맺어진다. 그렇다면,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공연을 연출/진행하는 달랑, 가믈란 연주자, 노래하는 가창자의 체력이 얼마나 좋아야 할까. 체력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와양 이야기의 교훈은 대체로 “카르마(Karma)에 충실하고, 다르마(Darma)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의 ‘권선징악’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카르마는 나를 지배하는 운명이자,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운명으로서, 내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다르마는 내가 지배하는 운명으로서, 카르마 안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나의 의지인 것이다.
와양에서 자주 공연되는 이야기는 “라마야나(Ramayana)”, “마하바라타(Mahabharata)”,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 그리고 인도네시아 레퍼토리 “빤지(Panji)”와 “뿌나까완(Punakawan)”이 있다. 고 한다.
이 중 자바 인들은 어떤 이야기에 가장 흥미를 느낄까. 바로크 스타일의 ‘마하바라타’는 중부 자바에서 더 주목을 받았고, 직설적인 ‘라마야나’는 춤추는데 더 애용되어 왔다고 한다. ‘라마야나’ 이야기와 마하바라타 이야기도 노경래 선생님께서 간결하게 잘 정리해 주셨다. 90여분 동안 와양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가 나온, 나는 와양들과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있는 듯한 착각에 감기약을 먹은 듯 멍한 느낌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오바마, 스티브잡스, 빌게이츠, 공포만화 등 이미 여러 권을 출간하신 만화가 이태수 선생님은 “처음으로 와양 공연을 만났습니다. 느낀 점은 기다림과 그리움입니다. 공연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그렇습니다. 물소의 가죽을 벗겨 말리는 과정과 그것을 말려 가공하고 완성품으로 가는 과정을 통해 신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기다림'을 느꼈고 가믈란 연주자들의 현란하지 않고 절제된 가지런한 몸가짐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신을 경배한다기 보다 신에 대한 '그리움'을 보았습니다. 감히 한나라의 유구한 문화 유산인 와양을 제 만화의 소재로 쓰고 싶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라고 소감을 피력하였다. 시인 최준선생님께서는 와양을 통해서 본 문화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강연 후, “Citra Santi Raras Group”의 와양 및 가믈란 공연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룹명의 의미는 선한 기도라고 하였다. 아직은 어려 보이는 작은 체구의 달랑이 와양을 공중으로 힘차게 던진 후 받고, 와양의 팔을 잡고 와양을 수십 바퀴 휘두르는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공연의 변사 역할을 하는 모습도 매우 감동적이었다. 공연 중에 몸집을 들썩거리며, 리듬을 타는 모습은 그의 끼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장시간 무릎을 꿇고, 정갈하게 올린 머리의 스타일로 무표정하게 가창하던 여가수는 이미 다른 행사에서 낯이 익었다.
와양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그득 담고 집으로 오는 길은 참으로 행복했다. 10살 내 아이는 어떤 것을 느꼈을까.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스스로 인도네시아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노경래 선생님, 한*인니문화연구원, 그리고 행사를 후원해 주신 <PT. ACCURATE C.E.>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참고자료 : 강의 팸플릿 (노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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