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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 식해 – 문인협회 수필산책 2 [싱가포르 한인신문 신춘문예 우수작]

3,282 2017.10.26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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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 식해 – 문인협회 수필산책 2 [싱가포르 한인신문 신춘문예 우수작]

가자미 식해

이 은 주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한동안 보이지 않던 가자미 식해가 저녁상에 올랐다. 이번에는 아주 잘 익었다며 어머니는 슬며시 아버지 앞으로 내놓으신다. 어머니는 맛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아버지 얼굴만 쳐다보고 계신다. 여느 때 같으면 덜 익었느니 메조 밥이 너무 되다든지 트집이 많으신데, 오늘은 아무 말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이신다. 며칠째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며 흘린 눈물로 얼룩진 아버지의 얼굴은 또 하나의 이산가족의 모습이다. 우울해하는 아버지를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는 가자미식해를 만드셨다. 

아버지의 고향은 함경북도이다. 삼대독자로 잠시 다녀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남한으로 내려와 오십 년이란 긴 세월을 오고 가지 못한 채 묶여버렸다. 얼마 전부터 고향을 방문할 수 있다는 소식에 친구들과 고향 방문단 접수를 위해 다니셨다. 그 기쁨도 잠시, 자나깨나 그리워하던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오열을 참지 못하시더니, 식사도 거른 채 며칠 째 TV 앞을 떠나려 하지 않으신다. 안타까운 소식에 우리 모두 침통해 할 수밖에 없었다. 남한이 고향인 어머니는 얼굴 한번 뵌 적 없는 시어머니에게 전수 받지 못한 가자미식해의 맛을 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나름대로 책을 보기도 하고 맛있게 가자미식해를 담그는 음식점을 찾아가 묻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참 맛있다, 바로 이 맛이다! 라고 하신 적이 단 한번도 없으셨다. 매정한 아버지의 평가에 섭섭한 어머니는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 하면서도 참가자미 물이 좋을 때면 제일 먼저 달려가 가자미식해 재료를 사오신다. 

이번 고향 방문 길에 시어머님을 뵙게 되면 꼭 가자미식해 담그는 법을 물어봐야겠다고 벼르시더니 돌아가셨단 소식에 제사 음식을 만들듯 온 정성을 다해 가자미식해를 만드셨다. 어머니 마음을 아는지 이번 가자미식해는 유달리 쫄깃쫄깃한 맛이 들어 아버지도 오랜만에 맛있게 식사를 하신다. 가자미식해를 담글 때면 온 식구가 다 모인다. 올케들은 시집와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항아리에서 가자미식해를 떠 올 때마다 부산을 떨더니 이젠 가자미식해 담그는 방법을 알려 달라곤 한다. 가자미식해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노르스름한 참가자미를 골라 내장과 머리를 떼버리고 씻은 다음 소금을 뿌려 돌로 눌러둔다 하루 정도 지나서 2-3cm크기로 토막을 친다. 메조 밥을 돼 직하게 지어 마늘, 생강, 고춧가루, 엿기름을 부어 가자미 토막과 함께 항아리에 눌러 담고 삭힌다. 조밥이 다 삭으면 무를 굵은 채로 쳐서 소금에 약간 절인 후 마늘 고춧가루 통깨를 넣어 버무린 것과 가자미를 섞어서 담는다. 이틀 정도 잘 익히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어머니는 가자미식해의 온도를 맞추느라 늘 내 방 구석에 담요를 덮어 익히셨다. 하루쯤 지나면 익어가는 특유의 냄새가 싫어 나는 치워달라고 짜증을 내곤 했다. 내가 없을 땐 갖다 놓으시고, 돌아올 시간이면 치우느라 어머니는 항아리를 들고 소란스러운 숨바꼭질을 한다. 아버지께서 맛이 없다고 타박이라도 듣게 되면 내방의 온도가 맞지 않았다고 이유를 대곤 하신다. 이런 저런 트집을 잡는 아버지의 입맛은 할머니가 보고 싶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맛있다, 한 입 먹으며 철없이 웃는 딸의 모습에 녀석 네가 무슨 맛을 안다고하시며 아버지는 오랜만에 웃으신다. 쫄깃하게 씹히는 가자미, 무와 조의 섞임이 입안 가득 감칠맛을 낸다.

이젠 아버지의 그리움이 어떤 맛을 지녔는지 알 것 같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가자미와 조가 서로 겉돌기만 하더니 이산가족 상봉으로 온 세계가 떠들썩한 지금 만남과 화합의 맛인 양 푹 익어있다. 부모와 자식이, 형과 아우가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이 늙어버린 노부부가 만나는 광경이 이처럼 감칠 맛나게 할 줄이야. 그들이 흘리는 눈물로 인해 멀리 떨어진 지구촌 사람들의 가슴을 달구고 있다는 소식들이다. 

알아들을 수 없이 빠르게 부르는 랩과 노래말로 젊음을 노래하던 이 땅의 젊은 세대들은 어떤 심정으로 그 모습들을 지켜 보았을까? 어제는 아버지께 면 민회 (이북이 고향인 사람들의 모임)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가자미식해 좀 가져가시지요, 하며 보자기에 싸드린다. 아버지와 친구들은 가자미식해를 드시면서 얼마나 많은 얘기꽃을 피우셨을지 눈에 선하다. 젊은 시절 고향에서의 겨울 밤 술안주로 먹던 가자미식해의 맛을 토로하며 옛 고향 길을 따라 지칠 줄 모르고 걸으셨을 게 뻔하시다. 짧은 유년의 기억으로는 다 채워지지 않는 빈 그릇을 들고 돌아오시며 아버지는 얼마나 애통하셨을까? 안타깝게 흘러 보낸 반세기의 세월을 보상받듯이 가족을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지만 아버지처럼 뒤에서 우시는 사람들이 또한 얼마나 많을까?

TV에서 본 이산가족들의 생생한 슬픔을 지켜보며 세익스피어가 살아있다 해도 이 비극적인 아픔을 다루지는 못할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가로 막힌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겨눈 총부리가 녹슬지언정 혈육의 정은 변함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차가운 이데올로기의 장벽이 높다 해도 몸 속에 흐르는 혈육의 뜨거운 피로 녹아 내리지 않을게 있을까? 며칠 후면 상봉한 가족들은 또다시 이별의 아픔을 삼키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봇물처럼 터진 그리움을 어찌하고 돌아설지 그 또한 애닯기만 하다. 

친구들이 이산가족 상봉 기념으로 북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메뉴를 보니 가자미식해가 있다. 친구들은 맛이 없다며 먹지 않는다. 예전에 나도 그랬었다 맛이 없다고 투덜대는 딸의 모습을 보며 상에서 말없이 가자미식해를 내려놓으시던 아버지 마음이 어떠셨을까. 음식점을 나오며 가자미식해와 북한 술을 사왔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다 모였다. 아버지는 기억 속에 돼 감기던 고향의 그리움을 하나하나 우리들에게 풀어 놓는다. 술이 조금 오르니 아버지께서 고향 무정을 부르신다. 상기된 아버지의 표정처럼 가자미식해가 발갛게 홍조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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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 식해 : 함경도 향토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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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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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협 인니지부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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