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 상점에서 히잡을 쓴 여성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품을 살펴보고 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인도네시아 정부가 기독교의 메시아인 예수에 대한 명칭을 이슬람식 표현인 '이사 알 마시'(Isa Al-Masih)에서 기독교인들이 사용하는 '예수스 크리스투스'(예수 그리스도·Yesus Kristus)로 바꾸기로 했다.
13일(현지시간) 일간 콤파스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인적자원개발·문화 조정부는 내년도 공휴일을 확정하면서 기독교 명절인 성금요일과 예수 승천일의 이름을 교체하기로 했다.
성금요일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날이다. 인도네시아는 이날을 '와팟냐 이사 알 마시'(Wafatnya Isa Al-Masih)라 불렀다. 이사 알 마시의 죽음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내년부터 이를 '와팟냐 예수스 크리스투스'로 바꾸기로 했다.
또 부활한 예수가 다시 천국으로 돌아간 승천일도 '크나이칸 이사 알 마시'(Kenaikan Isa Al-Masih·이사 알 마시 승천)에서 '크나이칸 예수스 크리스투스'로 바꾸기로 했다.
이슬람 문화가 강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금까지 예수의 호칭을 이슬람 경전 '쿠란'에서 예수를 부르는 이사 알 마시로 표기해 왔다. 이사는 예수를 지칭하고 알 마시는 선지자라는 의미다.
하지만 기독교계는 이사 알 마시 대신 자신들이 부르는 예수스 크리스투스로 바꿔 달라고 주장해 왔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공휴일 명칭부터 바꾸기로 했다.
인도네시아는 전 국민의 약 87%가 무슬림이지만 이슬람교를 국교로 지정하지는 않고 있으며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 힌두교 등 다른 종교도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종 이슬람교 명절 외에도 다른 종교들의 기념일들도 공휴일로 지정한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기독교의 유일신인 하나님(하느님)을 표현할 때도 이슬람과 마찬가지로 '알라'라는 명칭을 함께 사용한다.
반면 동일 언어권이자 이슬람교를 국교로 지정한 말레이시아는 정부 지침을 통해 최근까지 기독교 출판물 등에서 '알라'라는 단어 사용을 금지해왔다. 하지만 2021년 말레이시아 대법원에서 이 지침이 위헌이라 판단하면서 기독교 출판물에서도 하나님을 '알라'로 칭할 수 있게 됐다.
안선근 인도네시아 국립이슬람대학(UIN) 교수는 "정부에서 기독교계의 입장을 받아들여 공식 명칭을 바꾼다는 것은 큰 의미"라며 "다양성 속에서 통합을 추구하는 인도네시아의 관용 정책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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