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의료진들이 방호복이 부족해 비옷을 입고 코로나19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템포 캡처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방호복 공동 생산이 양국의 새로운 협력 모범이 되고 있다. 현지 경제를 주무르는 중국계를 제치는가 하면, 인도네시아를 선점한 일본은 우리 방식을 그대로 본뜨고 있다. 민관의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다.
20일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과 한인 사회에 따르면 최근 한인 봉제업체들이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잇따라 방호복 생산 및 유통 허가를 따내고 있다.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에 위치한 ㈜GA인도네시아와 ㈜BPG 등 벌써 서너 곳이 허가를 받았다. 업체 관계자는 “보통 한 달 넘게 걸리는 서류 작업들이 단 하루만에 해결되는 기적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주문 물량 취소와 지불 중단에 시달리던 한인 봉제업체들은 속속 방호복 생산에 나서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간 방호복 생산기지로 한국과 중국 업체들을 저울질했다. 결국 한국산 방호복의 우수한 품질, 현지인 50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진출 한인 봉제업체 300곳의 친화력과 저력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 5만벌, 한국중부발전(KOMIPO) 1만벌 등 한국 업체의 잇단 선제적 방호복 기부도 한몫 했다.
인도네시아 의료진이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를 개조한 응급병원에 서 있다. 콤파스 캡처
양국은 방호복 공동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한국에서 원단을 들여와 방호복을 만들어 다시 한국으로 보내는 물량의 일부를 인도네시아 정부가 내수용으로 사들이는 방식이다. 의료진의 개인 보호장비 부족에 시달리던 인도네시아는 방호복 등 의료물품의 수출을 금지했는데, 한국만 예외를 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물량 배분 비율은 절반씩 정도로 얘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인도네시아 주재 일본 대사가 직접 한국 대사관에 연락해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방호복 공동 생산 방식을 청취하고 실행에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일본 측에 ‘한국에게 배우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인도네시아 진출 일본 봉제업체를 통해 우리 같은 방식으로 방호복을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레트로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교부 장관이 16일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화상 간담회를 하고 있다. 화상 간담회 캡처
한ㆍ인니 방호복 협력은 국제 협력의 본보기로 소개됐다. 레트노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교부 장관은 17일 한국일보를 비롯한 특파원 대상 화상 간담회에서 “한국, 일본과 함께 방호복을 공동 생산하기 위한 실용적인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에선 코로나19와 관련해 숨진 의료진이 40명이 넘는다. 한ㆍ인니 방호복 협력은 인도네시아 의료진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막는 ‘가뭄에 단비’인 셈이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한국 기업 배려는 더 있다. 바흐릴 라하달리아 투자조정청장은 17일 브카시 델타마스공단의 현대자동차 건설 현장을 직접 방문해 “현대차 공장 건설은 양국 간 약속이기에 (내년 말 완공)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역 경찰과 공무원에게는 코로나19 관련 ‘대규모 사회제한조치(PSBB)’에 따른 단속 등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현대차는 이 자리에서 한국 인력 180명이 입국할 수 있도록 비자 발급 협조도 요청했다.
바흐릴 라하달리아(오른쪽) 인도네시아 투자조정청장이 17일 브카시 델타마스공단의 현대자동차 건설 현장을 방문해 이영택 현대차 아태권역본부장과 얘기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이날 바흐릴 청장은 자카르타 북쪽의 수출자유지역 카베엔(KBN) 공단도 들러 한인 업체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했다. KBN 공단에 입주한 봉제 공장 두 곳 등 한인 업체 세 곳은 15일 ‘작업자 간 1m 거리 두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23일까지 폐쇄 조치됐는데, 이날 오후부터 조업이 가능해졌다. 단속 기준도 완화하기로 했다. 안창섭 재인도네시아한국봉제협의회(KOGA) 회장은 “인도네시아 정부와 한국 대사관, 한인 업계 대표들이 꾸린 핫라인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박재한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은 “비옷을 입고 환자들을 돌볼 정도로 열악한 인도네시아 의료 현실이 소개된 뒤 차근차근 진행된 양국의 협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라며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진정한 우정을 양국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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